헤비메탈

모틀리 크루

메모광과 글광 2009. 12. 4. 21:45

 개인생각 : 역시 중학교 때 열심히 들었던 밴드로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로 감성을 자극했던

                밴드로 기억한다. 지금도 대동서적에서 히트송앨범 구입해서 차에서 듣고 다닌다.

                보컬의 건방떠는 말꼬리 흐리는 발음에 심취했고 기타의 리프 진행도 좋아했던것

                 같다.

 

 

 

 

멤버
빈스 닐(보컬), 믹 마스(기타), 니키 식스(베이스), 토미 리(드럼)
데뷔
1981년 1집 앨범 [Too Fast For Love]
 

앨범활동

모틀리 크루(MOTLEY CRUE)
국적 : 미국
멤버 : TOMMY LEE (D), MICK MARS(G), VINCE NEIL(V), NIKKI SIXX(B)

LA메틀의 1세대 그룹 MOTLEY CRUE은 KISS를 잇는 페인팅 그룹으로 시작하였습니다. 81년 그룹을 결성하여 자비로 제작한 싱글 'STICK TO YOUR GIRLS'와 'THE TOAST OF THE TOWN'으로 반응을 얻자 자신감(?)을 갖고 일렉트라사와 정식계약을 하여 82년에 그들의 데뷰앨범 [TOO FAST FOR LOVE]를 발표하여 MOTLEY CRUE의 못말리는 끼를 알렸습니다.

이러한 출발을 한 MOTLEY CRUE 는 그들의 닉네임을 당당히 붙여주었던 탕아의 전형이며 대책 안 서는 삐딱함과 동시에 쾌락주의의 모든 것을 담은 MOTLEY CRUE의 문제작이며, LA메틀사에 길이 남을 앨범 [SHOUT AT THE DEVIL]을 발표하여 사운드면에서 전작보다 월등한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본 앨범은 섹스와 폭력으로 외설적인 가사로 삐딱한 젊음을 예찬하는 노래로 가득 차 있습니다. BEATLES의 'HELTER SKELTER'를 커버하여 적지 않은 화제거리를 남겼습니다.

85년에 [THEATRE OF PAIN]을 발표하여 전작보다 성숙한(?) 그들에 조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블루지한 감성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SMOKING IN THE BOYS ROOM'이 히트하였으며, 국내에선 아름다운 발라드 곡인 'HOME SWEET HOME'이 많은 인기를 누려 MOTLEY CRUE하면 이 곡을 떠올렸습니다. 이건 우리나라의 특수성(?)인 것 같습니다.

헤비메틀계의 최정상에 선 MOTLEY CRUE는 그때까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메이크업을 지우고 새로운 이미지로 변신, 몸에다 문신으로 도배를 하고 나타나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4집앨범인 [GIRLS, GIRLS, GIRLS] 를 발표하여 타이틀곡인 'GIRLS, GIRLS, GIRLS'와 'BAD BOY BOOGIE'등이 히트했습니다.

사운드에서 다시 한번 월등하게 향상된, 그리고 90년대의 최고의 프로듀서인 밥락과 만든 MOTLEY CRUE의 최후의 역작 앨범 [DR. FEELGOOD]을 발표하여 빌보드앨범챠트 1위를 올리는 쾌거를 이룩하였습니다. 수록곡 대부분 히트싱글이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앨범입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음악활동 10주년을 기념하여 91년에 베스트앨범 형식에다 라이브 등 새로운 버젼을 수록한 DECADE OF DECADENCE를 발표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으며, 펑크록의 클래식 'ANARCHY IN THE U.K.'를 MOTLEY CRUE버전으로 들을수 있습니다.

92년초에 빈스닐이 탈퇴, 그룹 스크림 출신의 존 코라비를 맞이하여 새로운 앨범제작에 착수하여 94년 [MOTLEY CRUE]를 발표하지만 전성기만큼의 인기를 전혀 누리지 못했습니다. 빈스닐 목소리에 익숙해진 MOTLEY CRUE의 팬을 만족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고 봅니다.
MOTLEY CRUE 하면 생각나는 보컬이 다시 들어와서 97년에 [GENERATION SWINE]를 발표하지만 메탈음악에 목말라 하는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뒤로 한채 얼터너티브성향의 곡으로 자신들의 음악성향을 변절하여 메탈팬들을 전혀 만족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발매된 다른 그룹들의 앨범들과 더불어 가장 입방아에 많이 오른 앨범이었습니다. 저역시 한두번 듣고 던진것으로 기억합니다. 98년에 다시 베스트앨범을 발매하는 치사함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