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

블루치어

메모광과 글광 2009. 12. 25. 20:11

        

 

   헤비메탈(Heavy Metal)의 원형을 제시한 밴드로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크림, 지미 핸드릭스(가 이끌었던 밴드)를 꼽는다. 헤비메탈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하나의 장르로 모습을 갖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702 13일 금요일 출시된 블랙 사바스의 1집이었다. 하드 락(Hard Rock)과는 다른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 육중한 쇠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묵직한 베이스 라인과 베이스 드럼의 원투 펀치, 멜로디와는 상관없이 탱크처럼 질주하듯 진행되는 기타 리프, 하이 톤으로 마구 토해내는 보컬의 샤우팅은 당시 메인 스트림 락 밴드들에 만족하지 못하던 젊은이들의 하드코어적인 취향을 훌륭히 만족시키며, 락 음악의 중요한 서브-장르 중 하나인 헤비메탈의 주된 캐릭터로 자리잡는다.

 

   미국밴드 블루 치어(Blue Cheer)는 블랙 사바스보다 2년 앞서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의 주물을 최초로 떠서 당시 젊은이들에게 들려준 밴드이다. 최초의, 또는 갓파더(godfather)라는 타이틀은 모두 블랙 사바스에게 넘겨줬지만, 헤비메탈 장르 탄생의 숨은 일등공신인 블루 치어의 데뷔 앨범 Vincebus Eruptum 은 블랙 사바스의 1집보다 2년 일찍, 레드 제플린의 데뷔보다 1년 먼저인 1968년 발매되었다.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뜨겁게 보내고 있던 1960년대 말의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블루 치어는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락에 기반을 두면서, 당대 어떤 밴드들보다 더 시끄럽고 요란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 이나 도어즈의 Light my fire, 롤링 스톤즈의 Sympathy for the devil 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떤 밴드의 LP 를 찾아야 하는가? 블루 치어는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접근한 적 없던 시끄러운 음악으로 나아갔다.

 

 

                                                  

                         

 

    데뷔 앨범에서 가장 히트한 곡이자 빌보드 싱글차트 14위까지 올랐던, 에디 코크란 커버곡 Summertime Blues 는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행복한 여름을 이글거리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데일리 잡(daily job)에서 하루 종일 돈을 벌어야 하는(최저임금을 손에 쥐는데 만족하면서), 노동이 행복하지 않은 청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선구자랄 수 있는 이 젊은이는 자신의 문제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경제적 수위와 여기에 미칠 리가 없는 자신의 경제적 수준의 불일치 문제 를 유엔(United Nations)에 가서 항변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하원의원을 만나보려고도 하지만, 투표 연령에 미달인 그를 하원의원이 거들떠 볼 리 없다. 이래저래 뿔이 난 주인공의 스트레스 쌓이는 여름날은 퍼즈톤을 잔뜩 먹고 노이지하게 징징대는 기타소리와 세트를 부술 듯 쾅쾅거리는 드럼 연주(아마추어적인 파괴에 가까운 이런 연주는 쾅쾅거리더라도 세련된 힘이 묻어있고 강약의 조절이 분명한 본조(Bonzo)의 드럼과는 차이가 분명 있다, 물론 블루 치어는 don’t give a shit about it)와 무겁고 강렬하게 깔린 베이스로 구성된 트리오를 통해 대리 배설된다.

 

   3인조라는 미니멈 인원으로 구성되었지만, 사운드의 규모는 여느 4~5인조 밴드 못지 않다. 또 다른 메탈 사운드의 선구자로 꼽히는 영국 밴드 킹크스(The Kinks)쎄게때리는 연주와 닮은 블루 치어에게는 데뷔 앨범에서 히트한 Summertime Blues (Rolling Stone 지가 뽑은 가장 위대한 기타 연주 100” 순위에서 73위에 선정되기도 했던) 가 처음이자 마지막 히트곡이었다. 이후 밴드 멤버들의 잦은 변동은 음악의 일관성을 흐려 놓게 되고 캘리포니아의 시끄러운 메탈은 10여 년 뒤, 어여쁜 글램 후배들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바람을 타게 된다.

 

   Vincebus Eruptum 앨범에는 B.B.King 의 커버인 Rock Me Baby 같은, 블루스에 기반을 둔 곡들과 사이키델릭 스타일 곡들이, “더 쎄게, 더 시끄럽게라는 구호 아래 뭉친 3인의 트리오 디키 피터슨(베이스, 보컬), 폴 웨일리(드럼), 리 스티픈스(기타) – 의 듣도 보도 못한 난데없는 등장을 마무리한다. 여느 때보다 더 덥고, 더 건조하고, 더 더러울 것이라는(그 놈의 누런 바람 때문에) 2009년 여름의 시작을 예고하는 날씨가 이제 막이 오르고 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상관 없이, 젊은이들의 주머니 스탠더드와 원하는 것을 누리기 위한 워너비 스탠더드’(wannabe standard) 사이의 갭(gap)은 하해(河海)와 같기만 하다. 누군들 완전히 자유로운 현실태와 가능태의 일치를 누리겠냐만은, 나만 유독 X같은 입장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 인간이란 주관적인 동물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꽉 막힌 욕망의 구멍을 뻥 뚫어주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친구들 중 한 명(아니 세 명)이 들려주는 Summertime Blues 를 들으며, 내리쬐는 태양이 삶의 권태를 불러오지 않는 여름이 되길 바래본다.